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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누구를 기쁘게 했는가? 오늘 내가 해 본 새로운 일 하나는 무엇인가? 오늘 내가 얻은 멋진 영감 하나는 무엇인가? by 레몬쇼크


'오스티엄'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08/11/05 친구 결핍증
  2. 2008/10/09 내게 이런 친구가 있는가, 나는 친구에게 이런 존재인가
  3. 2008/10/07 친구의 전화 - 2
  4. 2008/10/07 친구의 전화 - 1
  5. 2008/08/26 두 얼굴의 야누스, 결혼

친구 결핍증

어디에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최근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연예인들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친구만이라도 있었다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거라는 내용이었다. 인생에 관한 한 '만약'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할 수 밖에 없지만 충분히 공감가는 내용이기는 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필요한 것은 논리적인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을 가슴으로 공감해주는 단 한사람의 열린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조금만 찾아보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TV프로그램에 소개된 사연을 듣고, 헌신적인 구조자의 설득으로, 때로는 전혀 엉뚱한 전화 한 통을 받고도 삶에 대한 새로운 의욕을 불사를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지만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중의 하나가 '항우울제'이다. 우울증, 조울증, 공포증과 같은 신경정신과 질환이 너무나 많아져서인지 최근 국내에서는 관련 전문의들이 '정신과'라는 이름을 바꾸기 위해 따로 회의를 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기사의 내용을 곱씹어 보면서 어쩌면 문제의 해결방법을 '친구'라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찾아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 약을 먹고 상담을 받는 것보다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단 하나의 살아갈 이유를 전해줄 수 있는 '진정한' 친구 하나를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앓고 있는 것이 '우울증'이 아니라 '친구결핍증'이라면 말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생존을 위한 사회생활에 뛰어들면서 과연 나는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 본 적이 있을까? 친한 동료는 있어도 '친구'까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여기서 말하는 친구란 아무런 경쟁의식 없이 서로의 적나라한 약점까지도 내보일 수 있는 그런 의미의 친구다. 사실상 스무살 이후로 친구의 역사는 열개의 인디언 인형이 하나씩 사라지는 경험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친구를 잃어왔다.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소원해진 친구도 있지만 생각 차이, 입장 차이로 인해 의도적으로 멀어진 친구도 많다. 교통사고로 잃어버린 친구도 있고 너무나 다른 삶의 길을 걸어가서 돌이킬 수 없게된 친구도 많다. 그러나 새로 친구를 만든 적이 있냐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글쎄요라고 밖에... 친구 만들기가 잃어버린 기술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가 아는 성경 이야기 중에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 너무나 타락한 나머지 하나님이 불을 내려 이들을 없애버리려 하자 자신의 조카가 그 곳에 사는 걸 알고 있는 아브라함이 필사적으로 이를 막는 장면이다. 하나님과의 이 유일무이한 협상 테이블에서 그는 대단한 성과를 이룬다. 바로 10명의 의인만 있어도 멸망을 막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처음 50명에서 시작한 것에 비하면, 그리고 그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말 기적적인 결과였다. 그러나 결과는? 10명은 커녕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가족 4명이 겨우 그곳을 빠져나오고 그나마도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바라는 것은 '의인'이 아니라 친구다.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 이후 하나님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취한 또 다른 방법은 '협상'이 아니라 '희생'이었다. 바로 그 자신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으로 내려와 그들이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을 함께 하면서 세상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 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나는 종교적인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친구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 TV와 핸드폰, 컴퓨터, 그리고 무의미하고 감각적이고 경쟁적이고 계산적인 인맥만이 남은 이유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남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으려는 '사랑'이 사라지면서 친구도 사라졌다. 진짜 친구를 만드는 방법이 '인맥'을 넓히는 방법과 완전히 다른 이유로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 오늘 필요한 것은 친구와 관계를 향한 간절함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기꺼이 쏟아부을 수 있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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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런 친구가 있는가, 나는 친구에게 이런 존재인가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지만 오늘 보니 다시 새롭다.
이런 친구가 한 명만 있어도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리라.
친구는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니까...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야지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가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분유를 굶어야한다.
철환이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내 마음 많이 아프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 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 천 원이다.
하지만 슬프진 않다.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너와 함께 읽으며 눈물 흘렸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에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사자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이원수 선생님의 <민들레의 노래>를 읽을 수 있으니
나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밥을 끓여먹기 위해
거리에 나 앉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수천 수만이다.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너무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어제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오스스한 별을 보았다.
개 밥그릇에 떠있는 별이
돈보다 더 아름다운 거라고 울먹이던 네 얼굴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가서 먹어라.
철환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마음껏 마음껏 빛나 거라.
친구여....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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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전화 - 2

6년만의 가족 여행 중에 전화가 왔다.
친구의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2박 3일의 여행중 이틀째 날,
만약 문상을 가려면 결혼 후 첫 번째 가족여행이 토막날 상황이었다.
여행가방 서너개와 아이들 둘을 아내한테 죄다 맡겨야 하고...

고심 끝에 친구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얘기하다보니 여행때문에 문상을 못 간다는 설명이 되고 말았다.
그 후 그 친구에게 몇 번 전화를 걸었지만 안 받거나 받더라도 시큰둥했다.

과연 우리 둘 중 누가 잘못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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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전화 - 1

어느 날 갑자기 1년 넘게 연락이 없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통화를 했는데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전화 시작서부터 끊을 때까지 미국 출장 다녀온 이야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쯤은 어떻게 사는지도 묻고
아이들일 잘 자라는지, 하는 일이 잘 되는지,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결국 마무리는 자신을 스카웃하려는 회사가 있는데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막고 있다는 이야기로 끝이 났다.

얘도 내 친구일까?
오는 전화를 막을 이유야 없지만 굳이 먼저 연락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내 속이 좁아서 그런지 가끔씩은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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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야누스, 결혼

두 개의 뉴욕

'결혼'과 관련한 특집을 준비하면서 편집자들은 심각한 내홍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들은 타겟 시장이 주로 '미혼 여성'이란 점을 들어 그들이 공감하는 기사를 싣고자 했다. 기혼자들이 쓴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는 이러이러해야한다'라는 기사에는 이제 넌덜머리가 난다는 표정들이었다. 결혼과 삶, 그리고 자신들의 인생을 '정답'이라는 잣대로 저울질하는 시도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작동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기혼자들 입장에서도 미혼 편집자들의 글이 달갑지 않았다. '늬들이 결혼을 알아?'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살아보지도 않고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기사 톤에는 약간의 화도 치미는 모양이었다. 한번 살아보라지... 그러면서도 주독자 층을 감안하면 리얼한 결혼생활의 실체를 알려주는 것 역시 현명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결혼생활의 실상을 얘기할라치면 어디선가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한 얘기를 듣고 와서는 '저도 그런 결혼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미혼 앞에서 자존심이 상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결혼이라는 것의 실체는 도대체 어느 쪽에 더 가까운 것일까?

  똑같은 한 마리의 코끼리를 앞에 두고 서로 다른 부위를 붙잡고 늘어지는 꼴이라면 독자들은 두 종류의 글 모두에 대해 실망할 것이 분명하다. '경험'의 중요성을 얘기하자면 왜 그 수 많은 일본 연구서들 중에서 유독 '국화와 칼'이 인정을 받고 있는 점을 설명하기 (불가능하진 않지만)어렵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에 단 한 번도 다녀오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결혼에 대한 '문제제기' 정도로 끝내는 책이라면 결혼준비로 머리가 터지기 일보 직전인 예비 신랑, 신부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들이 '결혼'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아마도 애를 하나이상은 키워 본, 삶의 쓴 맛을 체험하거나 '이혼'을 심각하게 마음속으로 고려해보는 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하는 쪽도 듣는 쪽도 모호하기만 한 시장이다. 이건 마치 '눈으로 본 뉴욕'과 '이야기로 들은 뉴욕'의 차이만큼이나 커서 본 쪽은 들은 판타지를 이해하기 어렵고, 들은 쪽은 눈으로 확인한 리얼리티가 가슴 깊이 와 닿지 않는다.

  썀 쌍둥이는 행복하지 않다?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그의 책에서 샴 쌍둥이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꼬집어 이야기한다. 즉 두 사람의 몸이 붙은 상태라면 우리는 결코 행복한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 그들(이 책에서는 로리와 레바)은 행복하다고 말하며 실제로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로리와 레바만이 경험할 수 있는 동반자로서의 사랑, 더 없이 행복한 일치감, 아가페적 사랑 등을 우리는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몹시 기쁘다고 말한다 해도 그들의 행복 경험보다는 한 수 아래일 수도 있다. 같은 논리로 당신이나 나 그리고 로리와 레바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우리가 지금껏 경험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결혼에 대해 어떤 기대감과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기혼자들이 함부로 그들의 꿈에 대해 뭐라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결혼에 대한 환상이 클수록 더 행복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이룰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환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어려움들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충분히 안정적인 재정적 필요와 함께 수 십년간 다른 문화과 배경속에서 살아온 두 이기심이 만나 깍여 나가는 아픔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각오가 없는 결혼생활은 그야말로 한 여름밤의 꿈 이야기에 불과하다.

결론은 이렇게 마무리 되어야 할 것 같다. 결혼을 인생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이자 선택의 문제로 생각한다면 '결혼' 자체에 지나치게 큰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행복한 결혼생활도 알고 보면 건강한 자아를 가진 두 개의 성숙한 인격체가 만났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아도 주변사람들과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굳이 '마더 테레사'를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많이 만날 수 있다.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다고 해서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며, 더 행복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얘기이다.

만일 이 책을 통해 미혼과 기혼이 말하는 결혼의 다양한 모습들을 모두 담으려는 욕심에 누군가 딴지를 건다면, 나는 대답 대신 길버트 교수의 아래 말을 인용할 것이다. 삶의 진정한 기술이란 그 사람이 비로소 삶에 대해 '겸손'해졌을 때 온 몸으로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법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고 나서는 예전에 했던 자신의 말이 빈약한 경험에서 나온 짧은 판단이었다고 주장한다. 예전에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판단 역시 잘못된 것일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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