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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공황장애 (소설 습작)'에 해당되는 글 3

  1. 2008/04/17 3. 두려움에 대하여
  2. 2008/04/17 2. 질식
  3. 2008/04/17 1. 공황장애

두려움이란 분명히 무의식의 저 깊은 곳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과 같은 것이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관한 그의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또렷히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투명한 비료포대에 얹혀진 채로 두 사람의 인부에 의해 실려 가던 조그만 아이에 관한 기억이었다. 그는 그 때 할머니의 등에 업힌 채로였고 화장실의 인분에 의해 그 작은 몸뚱아리가 갈색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있던 기억은 정말로 너무나 강렬한 것이어서 30년하고 또 몇 년을 살아오면서도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기억에 관련된 어떤 작은 단서라도 내 귀에 들릴라치면 그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슬로모션으로 그의 기억 속을 훑고 지나갔다. 2살일까 3살일까. 그 때의 그는 그 장면을 인지할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 장면이 혹 다른 곳에서 어떤 곳에서 본 그림이나 사진, 영화의 잔상이 아닐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적어도 의식속의 그에겐  그런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직접 보지 않았다면 스스로 창조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장면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그 일이 있었던 장소와 배경도 비교적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만약 그 장면을 실제로 보았다고 가정했을 때, 뭔가 알 수 없는 충격을 받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건 왜 그런것일까? 그 장면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데 왜 충격을 받았고, 또 왜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두 세살짜리 남자 아이가 할머니의 등에 업혀서 본 그 장면은 어떤 감정의 여과과정을 통해 그의 무의식 속 깊은 곳에 자리잡게 되었을까? 그것은 호기심이었을까. 아니면 공포였을까.

그가 조금 더 자라서 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그 ‘두려움’은 어떤 장면이나 상황보다는 관계라는 것을 통해 조금씩 그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학교’라는 곳에 가게 되는 나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때의 기억도 사실 완전치 않은 것이어서 막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낯설음에 대해서는 약간의 유추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가 어린 시절 살았던 그 섬으로 이사간 것은 남아 있는 사진의 기록으로 보아서는 정말이지 아주 어렸을 무렵이었다. 그런데도 왜 내가 입학했던 그 시점에 만나는 친구들은 그렇게 낯설기만 한 것일까?
관계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모든 상황과 방식, 습관, 그리고 교감에 관한 이야기를 통칭하는 말이다. 굳이 전문지식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한 줄의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임을 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 관계를 조금 더 쉽게 맺으며 즐길 줄 알고 또 그와 같은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마치 수학공식처럼 난해하고 익숙치 않으며 불편한 것으로 다가온다. 아무튼 그에게 아주 어린 초등학교의 시절은 유쾌하지 못한 몇몇의 기억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런 일과 관련해 맨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초등학교 1,2학년 쯤 되었을 무렵의 하교길이었다. 누구인지 왜인지 정확히 기억해낼 수 없지만 그는 심한 놀림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를 낯설어했고 경계했다. 그의 고향이 서울이었므로 오랫동안 그 텃세가 도심지에서 이사 온 아이에 대한 시기나 질투, 편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서울이란 곳을 떠나온 지가 아무리 못해도 5,6년은 되었을 무렵이었다.

작은 섬이었지만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섬이라 동네와 동네를 잇는 산은 높이가 있었고 그래서 마을 간의 이동은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는 아이들 간에는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그 섬에 막 도착해서 살았던 동네와 학교를 다닐 무렵의 동네는 다른 곳이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어찌 되었든 그는 그 동네에서는 이방인이었고 낯선 존재였으며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는 매일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바지에다 똥을 산 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놀림은 아이들이 성적에 눈 뜨고 또 그가 공부에 눈을 뜨게 되는 날 까지 계속 되었다. 그러나 그 놀림이 아주 끝나버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무리 작은 동네라도 아이들은 무리를 짓게 마련이고 그 무리에는 보이지 않는 우두머리가 생기게 되는 법이다. 사실 이것은 비단 아이들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사람이 존재하고 어울려 살아가는 이상은 마치 이 땅의 모든 사회를 지배하는 법칙이다. 그 작은 섬, 그리고 또 더 작은 그 마을에도 이 법칙은 아주 분명하고도 확실한 것이어서 친구 길우와 그 형이 그 동네에서는 보이지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그가 살던 마을은 다리 두개를 통해 이어진 개천을 사이에 두고 작은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앞산을 조금 가로 질러 올라가면 생기는 평지를 두고 드문 드문 집들이 있는 작은 마을이 또 하나 있었고 바닷가와 맞닿아 있는 높다란 산까지 이어지는 시내를 따라 또 하나의 작은 부락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의 기억으로는 이 모두가 하나의 마을로 불리지 않았나 싶다. 바다와 화산으로 이루어진 분지, 그리고 비탈을 깍아 만든 밭이 마을 사람들의 생계 터전이었는데 그가 아주 어린 시절 이 곳으로 이사 온 아버지는 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옷 장사 일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자잘한 이질감이 그러한 작은 고난의 어떤 원인을 제공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그 마을의 무리에서 약간은 비켜선 주변인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 길우의 형이 어느 날 오후 자기 집 앞 마당으로 그를 불렀다.

그가 그 집 앞 마당 근처의 골목길로 갔을 때 몇 명의 아이들과 함께 길우, 그리고 길우의 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영문을 모르고 불려간 그에게 권투 장갑을 내밀었다. 이 형제들은 어찌나 호기심으로 충만한지 어디선가 구한 발명에 관한 책을 보고 손수 솜사탕 기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비록 솜사탕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지만 그러한 호기심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서, 전등 타이머를 개발하거나 아무튼 일일이 기억할 수조차 없는 자잘한 발명품들을 곧잘 만들어내곤 했다. 그러나 그날의 호기심은 그러한 발명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과연 그가 얼마나 이 무리 속에서 약한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그런 실험의 시간이었다.

그가 권투 장갑을 들고 영문을 몰라 하자 무리 속에서 갸름한 곱쓸머리 하나가 권투 장갑의 줄을 희고 고르게 드러난 이로 묶으며 등장했다. 나름 강인한 인상을 주려는 듯 그 작고 단단한 이빨로 장갑끈을 묶어 매며 치켜 뜬 눈에서는 아주 기분 나쁜 미소가 언뜻 언뜻 비쳤다. 그는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 나이도 한 살 어렸고 아주 큰 덩치도 아니었지만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빠르게 대처하는, 그리고 강자와 약자를 본능적으로 인지하는 그 아이 앞에서 그는 싸우기도 전에 이미 전의를 상실해버렸다.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는 그의 모습을 보고 무리를 둘러싼 모든 아이들이 한참 동안 웃어재꼈다. 그는 그 순간만큼은 우주 속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어 있었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동생에게 맞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장면을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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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2008/04/17 23:51

2. 질식 습작/공황장애 (소설 습작)2008/04/17 23:51

그 일은 아주 순식간에 일어났다. 빛과 소음으로 가득한 이 세상이 단 1초도 되지 않아 어둠과 침묵 속에 깊이 잠겨버렸다. 또 아주 짧은 시간이 흘렀을 때 비로소 그의 눈 앞에 짙은 푸른색으로 채워진 낯선 세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달무리처럼 희끄무레한 빛의 그림자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몽환적인 일렁임으로 가득한 달리의 유화를 닮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선명한 어떤 색의 배열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불분명했다. 그것은 햇빛으로 가득한 해변에서 눈을 감고 손바닥으로 앞을 가릴 때 느꼈던 답답함과 닮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직접적인 어두움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의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곧 그가 지금 바닷물 속에 빠져 있으며 남들처럼 허우적거리지도 않고 넋 나간 듯 물 속에 잠겨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런데 전혀 숨이 막히지 않았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인식만큼은 무서우리만치 또렷했다. 그는 이 상태가 지속되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도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그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언젠가 물에 빠지고도 허우적대지 않으면 그만큼 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아주 드물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경우가 그랬지만 아예 지금처럼 넋을 놓은 상태라면 허우적대다 죽는 것과 매 일반일 것이다.

죽는다... 그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두려움보다 아쉬움 쪽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삶을 마감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쟎아. 나는 푸념도 원망도 아닌 주절거림을 속으로 삭이면서도 이상스러울만치 편안한 느낌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 편안했다. 책이나 TV, 영화속에서 나오는 고통스러운 마지막 순간과는 분명히 달랐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의외로 편안했다. 그리고 그는 직감적으로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사실 의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당시 그는 약간의 쇼크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질식과 두려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만큼의 정신적인 충격이 그를 덮친 것이다. 그런데도 신기하리만큼 그의 의식은 또렷했다. 이 모든 일은 주변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10초도 이어지지 않은 짧은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곧 그의 몸은 물 밖으로 끌어올려졌고 모든 상황이 분명해졌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그가 배들을 해안의 자갈밭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다듬어진 통나무를 잡고 헤엄 비슷한 것을 치고 있었고, 그 통나무가 갑자기 팽그르 도는 바람에 그가 물 속으로 빨려들어갔던 것이다. 다행히 바다가 땅만큼 익숙한 동네 아이들, 형들 속에서 그 일이 벌어졌고 형들 중 하나가 그의 머리를 잡고 냉큼 끌어올리면서 곧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아주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의 아버지도 먼 발치서 이 장면을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 일을 그다지 심각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물에 빠졌지만 곧, 정말이지 아주 금새 물 밖으로 끌어올려졌고 바다와 접해 사는 아이들에게는 그러한 일이 일상이었다. 모두들 그런 경험을 하면서 바다와 친해졌고 또한 자라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독 그만큼은 그 순간 성장이 멈추어버렸다. 적어도 두려움에 대한 그의 내성은 그 때 이후로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물 속에 있었던 그 순간보다 사실 물 밖으로 나와 그 장면을 회상하는 두려움이 그에겐 더 컸다. 그는 이후로 수영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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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2008/04/17 23:49

1. 공황장애 습작/공황장애 (소설 습작)2008/04/17 23:49

의사는 묵묵히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기다리고 있는 환자의 인기척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밖에 있는 간호사와는 컴퓨터를 통해, 그것도 약간의 곁눈질과 마우스 클릭으로 이 상황이 통제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의사는 아마도 이 환자에게 있어 첫 공식적인 진단이 줄 충격을 완화시킬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몇 가지의 질문을 통해 그는 자신이 예상하고 있던 병명이 맞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적인 위험이 없는 데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이 신기한 병, 혹은 증상이 과연 어떠한 이유로 그의 몸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에 관해 의사에게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참이었다.

두려움과 공포, 그것들이 이제는 몸 밖으로 나오려 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그의 몸 곳곳에 수 없이 많은 안테나를 세워두고서 몸 안과 몸 밖의 모든 신호들을 필요이상으로 과다하게 수신하고 있었다. 공황장애는 그런 병이었다. 대개의 경우 단순한 어지럼증 정도로 시작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죽거나 미치거나 자제력을 잃을 것 같은 공포감과 함께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병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공황발작이라고 불렀다.

몇달 전 그에게 이러한 증상이 찾아왔었다. 피곤한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지하철 안이었다. 갑자기 숨 막힐 듯한 공포와 어지러움이 그를 엄습해왔다. 너무도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그는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일단 열차를 빠져나와 계단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지하의 탁한 공기가 마치 그의 목을 옥죄는 듯 한 공포감을 불러오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초가을의 찬바람이 지나다니는 차들과 함께 가볍게 요동치는 지상으로 빠져나왔을 때도 그의 심장은 가쁘게 뛰고 있었다. 좀체 안정이 되질 않았다. 그는 가까운 약국에 가서 증세를 설명했고 약사는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닌 듯 익숙하고 확신에 찬 손놀림으로 병으로 된 약 하나를 꺼내주었다. 액체로 된 우황청심원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안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 공포감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온갖 생각과 걱정이 텅 빈 머리와 가슴속으로 다시 밀려들었다.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세상이 흔들렸다. 아니 내 머리가 실제로 흔들리는지도 몰랐다. 그것도 아니면 몸 전체가 중심을 못잡고 있는 것처럼도 여겨졌다. 그것은 곧장 불안감으로 이어져 그야말로 좌불안석 안절부절 의자위에서 들썩거렸다. 그는 공황장애에 대해 설명한 인터넷 사전의 설명을 떠올렸다.

공황장애란 인체를 보호하기 위해 일어나는 일종의 투쟁·도피반응이다. 문제는 실제적인 위험대상이 없는 데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데 있다. 죽거나 미치거나 자제력을 잃을 것 같은 공포감이 동반된다. 대개 공황장애를 앓는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나는 신체적 증상에 대해 무슨 큰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위험 상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비교적 높은 유병률, 만성적인 경향, 재발, 삶의 질과 사회적 기능의 장애, 내과적 질환에까지 이환될 가능성의 증가, 자살로 인한 사망률 증가와 관련이 있다.

그가 공황장애가 맞죠?라고 물었을 때 의사는 신경정신과 의사로써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할 예의 그 훈련의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의사는 인터넷의 온갖 다양한 정보를 검색하고, 그것도 관련 카페 동호회에 가입하고 그것도 모자라 친구의사에게 그 병에 관한 모든 정보를 샅샅히 훑고 왔을 환자의 이력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익히 짐작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 무분별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의사란 단순히 예정된 약의 처방을 근엄하게 지시하는 역할만을 해야 하는가라는 약간의 짜증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의사가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확인만 거치고 그 후로는 의사의 진단과 조언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한 대응이 효과가 있었는지 의사는 사람의 온갖 장기로 연결된 전문적인 뇌의 그림을 그에게 펼쳐 보이며 이 공황장애란 병이 가진 비밀 아닌 비밀을 익숙하게 풀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은 이 병원에 오기까지의 여러 가지 학습을 통해 섭렵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혹시 자신의 표정에 잠깐이라도 지루함이 내비칠까 신경을 써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럴 때 의사는 또 어떤 질문을 할 수 있을까?

“공황장애란 자신의 위험을 항시적인 긴장을 통해 인지해야만 했던 원시시대의 동물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공황장애가 음식을 먹을 때 특히 심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죠.”
그는 식사할 때마다 유난스럽게 주위가 흔들렸던 경험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죠. 안전해진 겁니다. 그래서 위험을 인지하는 안테나의 숫자가 줄
어든 겁니다. 그러나 공황장애 환자는 다릅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항상 주변을 의식하며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야생의 동물들처럼 평상시에도 위험을 감지하는 안테나를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그리고 항상 켜두어야만 하는 겁니다. 이걸 전문용어로 교감신경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상태를 교감신경항상이라고 부르죠.  이 상태가 심해지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인 ‘공황발작’이 발발합니다. 사실 보통 사람들도 일생의 한두번은 이러한 공황발작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가 지속적이고 만성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이것을 공황장애라고 부릅니다.”

의사는 이 말끝에 약간의 시차를 두고 환자의 눈을 살폈다. 그리고 이러한 의학적인 설명보다는 이 환자에 대한 좀 더 많은 정보를 얻는 것이 우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요즘 부쩍 늘어나는 이 병에 대한 임상적인 호기심이 토요일 오후의 나른함을 달래줄 것이라는 작은 기대도 있었다. 그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것은 모든 정신과 치료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는 대기 중인 환자를 돌려보낼 것을 지시하고 이 토요일 오후 마지막 환자에게로 다시 돌아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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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